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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대 자산가 부부 살인 사건, '오버킬의 살인마' 박한상…범행 전 성매매 업소 방문 드러나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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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5-08-22 12:21

SBS의 인기 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과거의 중요 사건들을 생생하게 재조명하며 시청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지난 21일 방영된 '오버킬의 살인마-강남 대저택 부부 살인 사건' 편은 당시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렸던 비극적인 사건의 전말을 다루며 다시금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웠습니다. 그룹 에이핑크의 박초롱 씨, 배우 최태준 씨, 박호산 씨가 '이야기 친구'로 출연하여 사건의 심각성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본 기사에서는 해당 방송 내용을 바탕으로, 당시 국민적 공분을 샀던 이 잔혹한 사건의 배경과 진행 과정,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자 합니다.

당대 최고의 변호사마저 등 돌린 '끔찍한' 범죄자

이야기는 1993년 당시 '한국의 100대 스타' 중 38위에 이름을 올렸던 황산성 변호사로부터 시작됩니다.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후 20대에는 판사, 30대에는 국회의원, 40대에는 환경부 장관을 역임하며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이자 많은 여성의 '워너비'로 불렸던 인물입니다. 특히 당시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던 법률 자문 프로그램의 진행자로도 활약하며 대중적 인지도를 쌓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화려한 이력 중에는 다소 독특한 기록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31년 전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었던 최악의 범죄자의 변호를 맡았던 사실입니다. 황 변호사는 당시 사건 피의자의 변호를 자처한 이유에 대해 "살인 사건을 많이 변호했지만, 그토록 끔찍한 일을 어떻게 감당할지 걱정스러웠다"며, 피의자를 만나 '전도'하여 뉘우치게 할 생각이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피의자와 직접 대면한 후 황 변호사는 깊은 절망감을 느꼈다고 회고합니다. 그는 피의자를 "진짜 나쁜 놈", "아주 잔인한 놈"이라고 표현하며, 결국 변호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당대 최고의 법조인조차 감당하기 힘들었던 이 범죄자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오늘은 전 국민을 경악게 했던 '1호' 패륜 범죄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히 다루겠습니다.

100억대 자산가 부부의 비극적인 죽음

사건은 1994년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발생했습니다. 당시 삼성동은 그룹 총수, 연예인, 정재계 인사 등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부촌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주민들 사이에서는 '꿈의 궁전'이라 불리던 3층짜리 단독주택이 있었습니다. 실내 평수만 150평에 달하는 이 집은 당시 가격으로 약 9억 원, 현재 시세로는 300억 원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의 저택이었습니다.

이 저택의 주인은 한약사 박 씨 부부였습니다. 남편 박 씨는 한약재 시장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한약방을 운영하며 한약재 유통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두어 당시 100억 원에 달하는 자산을 축적했습니다. 이는 현재 가치로 약 1조 원에 해당하는 막대한 재산이었습니다. 이들은 회원 3천 명이 넘는 전국 한약사 모임의 서울시 지부장에 박 씨가 당선될 만큼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부유한 부부는 한 달 전 발생한 도난 사건으로 인해 자택 지상층 전체에 보안 시스템 공사를 진행하게 되었고, 그 때문에 잠시 지하실에서 기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1시 30분, 박 씨 부부의 집에서 불이 났다는 신고 전화가 119에 접수되었습니다. 소방대는 신속하게 출동하여 20분 만에 불길을 잡았지만, 꿈의 궁전은 하룻밤 사이 잿더미로 변해버렸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박 씨 부부가 지하실 안방 장롱 앞에서 까맣게 탄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보통 주택 화재 시 시신은 창문이나 출입구 근처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많지만, 부부는 문과 반대 방향에 엎드린 채 발견되어, 불이 나기 전에 이미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음을 짐작게 했습니다.

단순 화재에서 잔혹한 살인 사건으로 전환

부부의 시신이 병원 영안실로 옮겨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건은 전혀 예상치 못한 국면을 맞이했습니다. 당시 강남경찰서 강력2반 조상복 형사는 영안실로부터 충격적인 전화를 받았습니다. 영안실 직원이 탄화 시신 상태인 부부의 시신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고 보고한 것입니다. 시신이 불에 타 수축되었던 피부가 온도 변화로 서서히 이완되면서,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던 칼에 찔린 흔적이 뒤늦게 드러난 것이었습니다.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간 형사들은 시신을 뒤집어보고서야 칼에 찔린 상처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참혹한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이는 단순 화재 사건이 아닌, 명백한 살인 사건임을 시사했습니다.

화재 감식 결과는 이 충격을 더했습니다. 지하실에서 휘발유가 발견되어, 누군가 고의적으로 불을 지른 방화 사건임이 밝혀진 것입니다. 당시 언론은 "엽기적인 살인사건", "100억대 자산가 부부가 흉기에 찔린 채 불에 타 참혹하게 숨졌다"고 보도하며 사건의 심각성을 알렸습니다.

곧바로 꾸려진 수사팀은 처음에는 금품을 노린 강도 살인에 무게를 두었습니다. 그러나 범죄 현장을 조사한 결과, 1층에 있던 금고와 그 안의 현금, 수표, 다이아몬드 반지 등이 모두 온전한 상태였고, 뒤진 흔적도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범인이 돈이 아닌, 부부 자체를 노렸을 가능성을 높였습니다.

이후 국과수에서 진행된 부검 감정서는 형사들의 얼굴을 창백하게 만들었습니다. 남편의 시신에서는 안면부, 복부, 등 등 총 51군데의 자상이 발견되었고, 특히 심장 부위는 구멍이 뻥 뚫릴 정도로 18차례나 집중적으로 찔린 흔적이 확인되었습니다. 부인의 시신에서도 총 46군데의 자상이 발견되었으며, 턱 아래 목 부위는 머리가 분리될 정도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습니다. 두 사람은 합쳐서 무려 100여 차례의 다발성 자창, 즉 오버킬로 살해된 것이었습니다.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소장은 오버킬이 나타나는 주요 이유 중 하나로 "감정적 요소"를 꼽았습니다. 피해자에 대한 깊은 원한, 치정, 혹은 얽히고설킨 금품 관계로 인해 극도의 분노가 표출될 때 나타나며, 단순히 살해하는 것을 넘어 과도하게 흉기를 휘두르는 특징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특정 신체 부위에 상처가 집중되어 있다면, 이는 명확한 목표 의식을 가지고 공격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하며, 단순히 미움이나 분노를 넘어선 강한 증오가 깔려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습니다. 부검감정서에는 남편의 손에서 맨손으로 칼을 막으려다 생긴 방어흔도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박 씨가 범인과 몸싸움을 벌였음을 시사하며, 범인에게도 상처가 남아있을 수 있다는 중요한 단서가 되었습니다.

뜻밖의 용의자, 사건의 충격적 전개

형사들은 먼저 부부의 주변 인물들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탐문 수사를 시작했습니다. 박 씨가 워낙 마당발이었기에 시장 상인, 협회 관계자, 친척, 동네 주민, 심지어 배달부까지 강남 일대를 샅샅이 뒤졌습니다. 초기에는 한 달 전 집 수리 과정에서 아내 조 씨와 갈등을 빚었던 공사 담당자 A씨를 유력 용의자로 보았으나, A씨의 명확한 알리바이와 범행 동기의 불충분함으로 수사망에서 벗어났습니다. 또한, 박 씨가 서울시 지부장으로 당선된 것에 불만을 품은 사람이 있을까 하여 한약사 모임 관계자들을 조사했지만, 지부장이 명예직이라 특별한 불화는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형사들이 수사에 난항을 겪던 중, 사건 다음 날인 5월 20일 아침, 한 병원 응급실에 부스스한 머리와 옷 여기저기에 그을린 흔적, 팔과 종아리에 진물이 흐르는 남성이 들어왔습니다. 그는 전날 새벽 집에 불이 나서 탈출하다 다쳤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는 바로 박 씨 부부의 맏아들 박한상(23세) 씨였습니다. 미국에서 유학 중 방학을 맞아 귀국한 박 씨는 사건 당일 부모와 함께 지하실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박한상 씨의 진술은 여러모로 석연치 않았습니다. 그는 새벽 1시경 소변이 마려워 잠에서 깼을 때 안방에서 불길이 치솟는 것을 보고 작은방 창문을 통해 혼자 탈출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부모님의 안전을 먼저 확인하지 않은 채 혼자 탈출한 행동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더욱 충격적인 것은 부모님이 100여 군데 자상을 입고 사망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진술한 점입니다. 그는 "미국에서 와서 시차 적응이 안 돼 며칠 잠을 못 잤는데, 하필 그날 밤 9시부터 깊이 잠들어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고 변명했습니다.

조상복 형사는 박한상 씨의 진술이 거짓임을 직감했지만, 자식이 부모를 잔인하게 살해했다는 사실을 쉽게 믿기 어려워 더 이상 캐묻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강력1반 소속 한상희 형사는 박한상 씨의 친척들을 조사하던 중, 그가 평소 돈 문제로 부모 속을 많이 썩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습니다. 특히 장례식장에서 박한상 씨가 끔찍한 사고를 당한 부모의 현장을 태연하게 둘러보고 심지어 청소까지 하는 모습에 한 형사는 그를 예의주시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형사는 윗선에 박한상 씨를 용의자로 보고하고 수사를 요청했으나, "자식이 부모를 잔인하게 죽일 리 없다", "의심만으로 유족에게 2차 가해를 할 수 없다"는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당시만 해도 계획적이고 잔인한 존속 살해는 전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 형사와 한 형사는 확고한 심증을 가지고 몰래 '투 트랙 수사'를 진행했습니다.

조 형사는 박한상 씨의 감청을 시작했습니다. 사건 이후 친척집에 머물던 박 씨가 여자친구와 통화하는 내용을 듣고 그는 또 한 번 확신을 얻었습니다. 부모상을 당한 아들의 태도라고는 볼 수 없는 담담하고 우울함 없는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사건 발생 4일째, 박한상 씨의 화상 치료를 담당했던 병원 간호사로부터 결정적인 제보를 받게 됩니다. 간호사는 "처음 왔을 때부터 머리에 피가 많이 묻어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다친 상처는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조 형사는 이것이 피해자의 혈흔일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간호사는 또 하나의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습니다. 박한상 씨의 종아리 쪽에서 누군가 물어뜯은 듯한 치흔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조 형사는 곧장 박한상 씨가 머무는 친척집으로 찾아가 그의 종아리를 살폈고, 그곳에서 피해자와 범인 사이에 몸싸움이 있었다는 방어흔, 즉 치흔을 확인했습니다. 사건 담당 법치의학자 김종열 교수는 이 치흔이 단순 표피 박탈을 넘어 피부가 찢어진 좌열상이라고 감정했습니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 종아리 치흔이 어머니 조 씨의 치열과 정확히 일치했던 것입니다. 조 형사는 "어머니가 칼에 찔리면서 필사적으로 아들의 종아리를 물었던 모양"이라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어머니의 다리를 아들이 잔인하게 물어뜯기면서도 계속 찔렀다고 진술했습니다. 이는 박한상 씨가 이미 인간의 심정을 포기한 상태였음을 보여주는 참혹한 증거였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박한상 씨의 자백이었습니다. 한상희 형사는 박한상 씨를 불러내 조용히 "왜 그런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느냐"고 물었습니다. 불시에 던져진 질문에 박한상 씨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한 형사는 그간 수사한 증거들을 내밀며 추궁했습니다. 결국 박한상 씨는 모든 범행을 자백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버킬' 살인마의 정체와 범행 동기

박한상 씨는 곧장 경찰서로 연행되었고, 경찰서에 몰려든 취재진 앞에서 그는 고개를 돌리며 카메라를 피하기에 급급했습니다. 부모를 죽인 이유와 그토록 많이 흉기로 찌른 이유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박한상 씨는 "기억이 안 나요... 아무 정신이 없었어요"라고 모호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집 인근 공터에서 범행에 사용된 칼이 발견되었고, 그가 갈아입은 옷에서는 아버지의 혈흔이 확인되었습니다. 무려 100여 차례 칼을 휘둘러 부모를 살해한 오버킬 살인마의 정체는 바로 그들의 맏아들 박한상 씨였습니다.

한상희 형사는 31년이 지난 지금도 박한상 씨의 자백을 받던 순간을 떠올리면 섬뜩한 기분이 든다고 말합니다. 자백 조서를 받던 중 박한상 씨는 "여자친구에게 전화 한 번만 해달라"고 요청하는 등 전혀 반성하는 기색 없이 완전범죄를 저지르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한 형사는 당시 "얘는 무서운 애구나. 사람이 아니라고 느꼈다"고 회고하며 인류애가 부서지는 듯한 참담함을 느꼈다고 전했습니다.

박한상 씨가 부모에게 이토록 잔인한 범행을 저지른 동기는 무엇이었을까요? 남부럽지 않은 재력가 집안이었지만, 그 가족 안에는 오래전부터 깊은 균열이 존재했습니다. 삼형제 중 장남이었던 박한상 씨는 아버지 박 씨가 가장 아끼는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에게 최고의 옷과 음식을 제공하며 깊은 사랑을 쏟았습니다. 특히 아버지는 박한상 씨가 자신을 이어 한약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러나 박한상 씨는 학업에 전혀 소질이 없었고, 지방 소도시에 있는 토목학과에 겨우 입학했습니다.

그는 학교생활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서울에서 오렌지족으로 불리며 부유층 자제들과 어울려 사치와 향락을 즐겼습니다. 이에 아버지는 박한상 씨를 꾸짖으며 "이럴 거면 호적에서 나가라"고 질책했습니다. 결국 박한상 씨는 1993년 8월 미국 캘리포니아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그는 매달 200만 원에 달하는 용돈을 받으며 유학생들과 어울려 방탕한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돈이 떨어지면 몰래 귀국해 카드 대출을 받아 유흥에 탕진하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박한상 씨의 모든 행각을 알게 되었고, 사건 발생 이틀 전 심하게 꾸짖으며 다시 한번 호적에서 파내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박한상 씨는 아버지의 질책이 자신의 범죄 동기 중 하나가 되었다고 진술했지만, 그 이면에는 더욱 끔찍한 계획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범행 결심 다음 날 오전 11시, 박한상 씨는 잡화점에서 람보칼을 구입하고 주유소에서 휘발유 8리터를 샀습니다. 그는 범행 전 완전 범죄를 다룬 미국 영화를 보며 살인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모든 준비를 마친 저녁 6시, 범행 6시간 전 박한상 씨는 또다시 집을 나섰고, 심지어 성매매 업소까지 방문했던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안겼습니다. 그는 부모를 살해하기 직전, 성매매 업소에 들러 "한 번 할 생각이었다"고 진술하며 범행 직전까지 비정상적인 행태를 보였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박한상 씨는 밤 12시, 부모님이 잠든 것을 확인한 후 기괴한 행동을 합니다. 옷에 혈흔이 튀어 증거가 남을 것을 우려해 옷을 모두 벗어 소파 위에 놓은 뒤 팬티와 운동화만 착용하고, 하얀 침대 커버를 뒤집어쓴 채 한 손엔 람보칼, 다른 한 손엔 과도를 든 채 부모님이 잠든 안방으로 향했습니다. 그는 안방 문 가까이에 누워있던 어머니를 먼저 공격했고, 놀라 깨어난 아버지는 맨손으로 칼을 막으며 저항했습니다. 어머니 또한 필사적으로 아들의 종아리를 물어뜯으며 저항했지만, 박한상 씨는 멈추지 않고 부모님에게 칼을 휘둘렀습니다.

그가 어머니까지 살해한 동기는 바로 도박 중독과 유산 상속 때문이었습니다. 미국 유학 중 라스베이거스 등지에서 도박에 빠져 하룻밤에 두 달치 용돈을 탕진하고, 부모님이 차 구매 자금으로 보낸 1,500만 원까지 도박으로 날렸습니다. 빚과 거짓말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더 이상 돈을 구할 곳이 없자 그는 부모님의 유산을 상속받으려는 위험한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아버지 어머니 안 계시면, 제가 제 손으로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하며 충격을 주었습니다.

부모를 살해한 뒤 박한상 씨는 자신의 계획대로 화장실에서 몸에 묻은 피를 씻어냈습니다. 형사들이 루미놀 감식 용액으로 화장실을 점검했을 때, 마치 번쩍번쩍 빛이 날 정도로 혈흔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박한상 씨는 몸은 씻었지만, 머리는 감지 않아 그곳에 핏자국이 남아 있었고, 어머니가 마지막 순간 필사적으로 남긴 치흔과 함께 그를 특정할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습니다. 잘못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고, 천륜을 저버린 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비극적인 진실이었습니다.

국내 1호 패륜범, 사회에 던진 질문

그날의 끔찍한 진실이 세상에 드러나자 대한민국은 큰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유산을 노리고 부모를 끔찍하게 살해한 '패륜아 1호' 박한상의 등장은 전문가들로 하여금 긴급 간담회를 열어 대책 마련에 나서게 했으며, 당시 유행처럼 번지던 오렌지족 문화와 무분별한 도피성 유학 문제 또한 사회적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유산 남기지 않기' 캠페인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처음 박한상 씨의 변호를 자처했던 황산성 변호사는 재판 과정에서 또 한 번 충격에 빠졌습니다. 박한상 씨가 경찰의 고문을 주장하며 "나는 부모를 죽이지 않았다", "제3자가 죽였을지 모른다"며 허무맹랑한 거짓말로 무죄를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황 변호사는 박한상 씨가 지목한 사람들을 일일이 조사하고 수사 과정의 문제점 여부까지 확인했지만, 모든 증거는 박한상 씨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결국 황 변호사는 "더는 상대할 가치가 없다"며 변호를 포기하고 깊은 실망과 좌절을 느꼈다고 밝혔습니다.

최종 재판에서 재판부는 "사형을 피할 수 있는 명분을 찾기 위해 고심했으나, 피고인의 부모가 살아있을 경우 아들의 사형을 원치 않았을 거란 추측 뿐"이라며 박한상 씨에게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또한, 그는 상속인 결격자로 판정되어 부모의 유산을 단 한 푼도 물려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한때 강남을 주름잡던 오렌지족 박한상. 그는 결국 자신의 욕망에 발목 잡혀 '패륜아 1호'라는 낙인을 얻고 몰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박한상 씨는 1997년 마지막 사형 집행 시기에 포함되지 않아 현재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며,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오랜 기간 복역하고 있는 사형수입니다. 31년이 지난 지금, 과연 그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을까요? 사건 이후 6년 동안 박한상 씨의 상담을 담당했던 교화위원은 "부모를 살해하고 증거 인멸을 위해 방화까지 한 강남의 또라이 박한상, 이 아이를 6년 이상 상담하면서 느꼈던 참담한 심정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박한상 씨가 반성은커녕 살아서도 범죄 사실을 끝까지 부인하며 오히려 다른 이에게 누명까지 씌우려 했다며, "사형수 상담 30년 동안 이 아이 앞에서만큼 참담해 본 일이 없었고, 나는 끝내 용서하고 포용할 마음을 내지 못했다"고 증언했습니다.

박한상 사건은 당시 학교, 사회, 가정 모두에게 "과연 우리는 어떻게 아이를 길러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90년대 초 유행처럼 번지던 해외 유학과 스펙만을 좇던 사회 분위기 속에 무너진 인간성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이 사건을 계기로 터져 나왔습니다. 인성보다는 성공을 강요하고, 윤리와 도덕보다는 속도와 경쟁이 앞서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여전히 중요한 가치를 놓치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사건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용어해석

  • 오버킬 (Overkill):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할 이상의 과도한 살해 행위를 의미합니다. 주로 범인의 극심한 분노, 증오, 혹은 개인적인 감정적 동기가 반영된 경우에 나타납니다.
  • 탄화 시신 (Carbonized Body): 화재 등으로 인해 시신이 심하게 불에 타서 숯처럼 굳어버린 상태를 일컫는 의학 용어입니다. 시신의 원래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손상된 경우가 많습니다.
  • 치흔 (Bite Mark): 사람이나 동물 등이 피부나 다른 물체를 물어뜯어 생긴 흔적을 말합니다. 범죄 수사에서는 용의자나 피해자의 신체에 남은 치흔을 통해 중요한 단서를 얻기도 합니다.
  • 루미놀 (Luminol): 혈흔을 포함한 특정 화학 물질에 반응하여 어둠 속에서 푸른빛을 발하는 특수 화학 용액입니다. 범죄 현장에서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미세한 혈흔을 감식하는 데 사용됩니다.
  • 오렌지족 (Orange Tribe): 1990년대 초 한국 사회에서 부유층 자제나 해외 유학 경험이 있는 젊은이들을 지칭하던 용어입니다. 이들은 부모의 재력에 의존하여 값비싼 외제차를 몰고 유흥과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기는 것으로 묘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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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5-08-22 12:21

SBS의 인기 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과거의 중요 사건들을 생생하게 재조명하며 시청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지난 21일 방영된 '오버킬의 살인마-강남 대저택 부부 살인 사건' 편은 당시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렸던 비극적인 사건의 전말을 다루며 다시금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웠습니다. 그룹 에이핑크의 박초롱 씨, 배우 최태준 씨, 박호산 씨가 '이야기 친구'로 출연하여 사건의 심각성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본 기사에서는 해당 방송 내용을 바탕으로, 당시 국민적 공분을 샀던 이 잔혹한 사건의 배경과 진행 과정,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자 합니다.

### 당대 최고의 변호사마저 등 돌린 '끔찍한' 범죄자

이야기는 1993년 당시 '한국의 100대 스타' 중 38위에 이름을 올렸던 황산성 변호사로부터 시작됩니다.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후 20대에는 판사, 30대에는 국회의원, 40대에는 환경부 장관을 역임하며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이자 많은 여성의 '워너비'로 불렸던 인물입니다. 특히 당시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던 법률 자문 프로그램의 진행자로도 활약하며 대중적 인지도를 쌓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화려한 이력 중에는 다소 독특한 기록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31년 전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었던 최악의 범죄자의 변호를 맡았던 사실입니다. 황 변호사는 당시 사건 피의자의 변호를 자처한 이유에 대해 "살인 사건을 많이 변호했지만, 그토록 끔찍한 일을 어떻게 감당할지 걱정스러웠다"며, 피의자를 만나 '전도'하여 뉘우치게 할 생각이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피의자와 직접 대면한 후 황 변호사는 깊은 절망감을 느꼈다고 회고합니다. 그는 피의자를 "진짜 나쁜 놈", "아주 잔인한 놈"이라고 표현하며, 결국 변호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당대 최고의 법조인조차 감당하기 힘들었던 이 범죄자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오늘은 전 국민을 경악게 했던 '1호' 패륜 범죄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히 다루겠습니다.

### 100억대 자산가 부부의 비극적인 죽음

사건은 1994년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발생했습니다. 당시 삼성동은 그룹 총수, 연예인, 정재계 인사 등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부촌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주민들 사이에서는 '꿈의 궁전'이라 불리던 3층짜리 단독주택이 있었습니다. 실내 평수만 150평에 달하는 이 집은 당시 가격으로 약 9억 원, 현재 시세로는 300억 원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의 저택이었습니다.

이 저택의 주인은 한약사 박 씨 부부였습니다. 남편 박 씨는 한약재 시장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한약방을 운영하며 한약재 유통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두어 당시 100억 원에 달하는 자산을 축적했습니다. 이는 현재 가치로 약 1조 원에 해당하는 막대한 재산이었습니다. 이들은 회원 3천 명이 넘는 전국 한약사 모임의 서울시 지부장에 박 씨가 당선될 만큼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부유한 부부는 한 달 전 발생한 도난 사건으로 인해 자택 지상층 전체에 보안 시스템 공사를 진행하게 되었고, 그 때문에 잠시 지하실에서 기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1시 30분, 박 씨 부부의 집에서 불이 났다는 신고 전화가 119에 접수되었습니다. 소방대는 신속하게 출동하여 20분 만에 불길을 잡았지만, 꿈의 궁전은 하룻밤 사이 잿더미로 변해버렸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박 씨 부부가 지하실 안방 장롱 앞에서 **까맣게 탄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보통 주택 화재 시 시신은 창문이나 출입구 근처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많지만, 부부는 문과 반대 방향에 엎드린 채 발견되어, 불이 나기 전에 이미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음을 짐작게 했습니다.

### 단순 화재에서 잔혹한 살인 사건으로 전환

부부의 시신이 병원 영안실로 옮겨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건은 전혀 예상치 못한 국면을 맞이했습니다. 당시 강남경찰서 강력2반 조상복 형사는 영안실로부터 충격적인 전화를 받았습니다. 영안실 직원이 **탄화 시신** 상태인 부부의 시신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고 보고한 것입니다. 시신이 불에 타 수축되었던 피부가 온도 변화로 서서히 이완되면서,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던 칼에 찔린 흔적이 뒤늦게 드러난 것이었습니다.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간 형사들은 시신을 뒤집어보고서야 칼에 찔린 상처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참혹한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이는 단순 화재 사건이 아닌, 명백한 살인 사건임을 시사했습니다.

화재 감식 결과는 이 충격을 더했습니다. 지하실에서 **휘발유**가 발견되어, 누군가 고의적으로 불을 지른 **방화** 사건임이 밝혀진 것입니다. 당시 언론은 "엽기적인 살인사건", "100억대 자산가 부부가 흉기에 찔린 채 불에 타 참혹하게 숨졌다"고 보도하며 사건의 심각성을 알렸습니다.

곧바로 꾸려진 수사팀은 처음에는 금품을 노린 강도 살인에 무게를 두었습니다. 그러나 범죄 현장을 조사한 결과, 1층에 있던 금고와 그 안의 현금, 수표, 다이아몬드 반지 등이 모두 온전한 상태였고, 뒤진 흔적도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범인이 돈이 아닌, 부부 자체를 노렸을 가능성을 높였습니다.

이후 국과수에서 진행된 부검 감정서는 형사들의 얼굴을 창백하게 만들었습니다. 남편의 시신에서는 안면부, 복부, 등 등 총 51군데의 자상이 발견되었고, 특히 심장 부위는 구멍이 뻥 뚫릴 정도로 18차례나 집중적으로 찔린 흔적이 확인되었습니다. 부인의 시신에서도 총 46군데의 자상이 발견되었으며, 턱 아래 목 부위는 머리가 분리될 정도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습니다. 두 사람은 합쳐서 무려 100여 차례의 **다발성 자창**, 즉 **오버킬**로 살해된 것이었습니다.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소장은 오버킬이 나타나는 주요 이유 중 하나로 "감정적 요소"를 꼽았습니다. 피해자에 대한 깊은 원한, 치정, 혹은 얽히고설킨 금품 관계로 인해 극도의 분노가 표출될 때 나타나며, 단순히 살해하는 것을 넘어 과도하게 흉기를 휘두르는 특징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특정 신체 부위에 상처가 집중되어 있다면, 이는 명확한 목표 의식을 가지고 공격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하며, 단순히 미움이나 분노를 넘어선 강한 증오가 깔려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습니다. 부검감정서에는 남편의 손에서 맨손으로 칼을 막으려다 생긴 **방어흔**도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박 씨가 범인과 몸싸움을 벌였음을 시사하며, 범인에게도 상처가 남아있을 수 있다는 중요한 단서가 되었습니다.

### 뜻밖의 용의자, 사건의 충격적 전개

형사들은 먼저 부부의 주변 인물들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탐문 수사를 시작했습니다. 박 씨가 워낙 마당발이었기에 시장 상인, 협회 관계자, 친척, 동네 주민, 심지어 배달부까지 강남 일대를 샅샅이 뒤졌습니다. 초기에는 한 달 전 집 수리 과정에서 아내 조 씨와 갈등을 빚었던 공사 담당자 A씨를 유력 용의자로 보았으나, A씨의 명확한 알리바이와 범행 동기의 불충분함으로 수사망에서 벗어났습니다. 또한, 박 씨가 서울시 지부장으로 당선된 것에 불만을 품은 사람이 있을까 하여 한약사 모임 관계자들을 조사했지만, 지부장이 명예직이라 특별한 불화는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형사들이 수사에 난항을 겪던 중, 사건 다음 날인 5월 20일 아침, 한 병원 응급실에 부스스한 머리와 옷 여기저기에 그을린 흔적, 팔과 종아리에 진물이 흐르는 남성이 들어왔습니다. 그는 전날 새벽 집에 불이 나서 탈출하다 다쳤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는 바로 박 씨 부부의 맏아들 박한상(23세) 씨였습니다. 미국에서 유학 중 방학을 맞아 귀국한 박 씨는 사건 당일 부모와 함께 지하실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박한상 씨의 진술은 여러모로 석연치 않았습니다. 그는 새벽 1시경 소변이 마려워 잠에서 깼을 때 안방에서 불길이 치솟는 것을 보고 작은방 창문을 통해 혼자 탈출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부모님의 안전을 먼저 확인하지 않은 채 혼자 탈출한 행동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더욱 충격적인 것은 부모님이 100여 군데 자상을 입고 사망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진술한 점입니다. 그는 "미국에서 와서 시차 적응이 안 돼 며칠 잠을 못 잤는데, 하필 그날 밤 9시부터 깊이 잠들어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고 변명했습니다.

조상복 형사는 박한상 씨의 진술이 거짓임을 직감했지만, 자식이 부모를 잔인하게 살해했다는 사실을 쉽게 믿기 어려워 더 이상 캐묻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강력1반 소속 한상희 형사는 박한상 씨의 친척들을 조사하던 중, 그가 평소 돈 문제로 부모 속을 많이 썩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습니다. 특히 장례식장에서 박한상 씨가 끔찍한 사고를 당한 부모의 현장을 태연하게 둘러보고 심지어 청소까지 하는 모습에 한 형사는 그를 예의주시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형사는 윗선에 박한상 씨를 용의자로 보고하고 수사를 요청했으나, "자식이 부모를 잔인하게 죽일 리 없다", "의심만으로 유족에게 2차 가해를 할 수 없다"는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당시만 해도 계획적이고 잔인한 존속 살해는 전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 형사와 한 형사는 확고한 심증을 가지고 몰래 '투 트랙 수사'를 진행했습니다.

조 형사는 박한상 씨의 감청을 시작했습니다. 사건 이후 친척집에 머물던 박 씨가 여자친구와 통화하는 내용을 듣고 그는 또 한 번 확신을 얻었습니다. 부모상을 당한 아들의 태도라고는 볼 수 없는 담담하고 우울함 없는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사건 발생 4일째, 박한상 씨의 화상 치료를 담당했던 병원 간호사로부터 결정적인 제보를 받게 됩니다. 간호사는 "처음 왔을 때부터 머리에 피가 많이 묻어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다친 상처는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조 형사는 이것이 피해자의 혈흔일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간호사는 또 하나의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습니다. 박한상 씨의 종아리 쪽에서 누군가 물어뜯은 듯한 **치흔**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조 형사는 곧장 박한상 씨가 머무는 친척집으로 찾아가 그의 종아리를 살폈고, 그곳에서 **피해자와 범인 사이에 몸싸움이 있었다는 방어흔, 즉 치흔**을 확인했습니다. 사건 담당 법치의학자 김종열 교수는 이 치흔이 단순 표피 박탈을 넘어 피부가 찢어진 **좌열상**이라고 감정했습니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 종아리 치흔이 어머니 조 씨의 치열과 정확히 일치했던 것입니다. 조 형사는 "어머니가 칼에 찔리면서 필사적으로 아들의 종아리를 물었던 모양"이라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어머니의 다리를 아들이 잔인하게 물어뜯기면서도 계속 찔렀다고 진술했습니다. 이는 박한상 씨가 이미 인간의 심정을 포기한 상태였음을 보여주는 참혹한 증거였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박한상 씨의 자백이었습니다. 한상희 형사는 박한상 씨를 불러내 조용히 "왜 그런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느냐"고 물었습니다. 불시에 던져진 질문에 박한상 씨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한 형사는 그간 수사한 증거들을 내밀며 추궁했습니다. 결국 박한상 씨는 모든 범행을 자백하기 시작했습니다.

### '오버킬' 살인마의 정체와 범행 동기

박한상 씨는 곧장 경찰서로 연행되었고, 경찰서에 몰려든 취재진 앞에서 그는 고개를 돌리며 카메라를 피하기에 급급했습니다. 부모를 죽인 이유와 그토록 많이 흉기로 찌른 이유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박한상 씨는 "기억이 안 나요... 아무 정신이 없었어요"라고 모호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집 인근 공터에서 범행에 사용된 칼이 발견되었고, 그가 갈아입은 옷에서는 아버지의 혈흔이 확인되었습니다. 무려 100여 차례 칼을 휘둘러 부모를 살해한 **오버킬 살인마**의 정체는 바로 그들의 맏아들 박한상 씨였습니다.

한상희 형사는 31년이 지난 지금도 박한상 씨의 자백을 받던 순간을 떠올리면 섬뜩한 기분이 든다고 말합니다. 자백 조서를 받던 중 박한상 씨는 "여자친구에게 전화 한 번만 해달라"고 요청하는 등 전혀 반성하는 기색 없이 완전범죄를 저지르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한 형사는 당시 "얘는 무서운 애구나. 사람이 아니라고 느꼈다"고 회고하며 인류애가 부서지는 듯한 참담함을 느꼈다고 전했습니다.

박한상 씨가 부모에게 이토록 잔인한 범행을 저지른 동기는 무엇이었을까요? 남부럽지 않은 재력가 집안이었지만, 그 가족 안에는 오래전부터 깊은 균열이 존재했습니다. 삼형제 중 장남이었던 박한상 씨는 아버지 박 씨가 가장 아끼는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에게 최고의 옷과 음식을 제공하며 깊은 사랑을 쏟았습니다. 특히 아버지는 박한상 씨가 자신을 이어 한약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러나 박한상 씨는 학업에 전혀 소질이 없었고, 지방 소도시에 있는 토목학과에 겨우 입학했습니다.

그는 학교생활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서울에서 **오렌지족**으로 불리며 부유층 자제들과 어울려 사치와 향락을 즐겼습니다. 이에 아버지는 박한상 씨를 꾸짖으며 "이럴 거면 호적에서 나가라"고 질책했습니다. 결국 박한상 씨는 1993년 8월 미국 캘리포니아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그는 매달 200만 원에 달하는 용돈을 받으며 유학생들과 어울려 방탕한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돈이 떨어지면 몰래 귀국해 카드 대출을 받아 유흥에 탕진하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박한상 씨의 모든 행각을 알게 되었고, 사건 발생 이틀 전 심하게 꾸짖으며 다시 한번 호적에서 파내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박한상 씨는 아버지의 질책이 자신의 범죄 동기 중 하나가 되었다고 진술했지만, 그 이면에는 더욱 끔찍한 계획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범행 결심 다음 날 오전 11시, 박한상 씨는 잡화점에서 **람보칼**을 구입하고 주유소에서 휘발유 8리터를 샀습니다. 그는 범행 전 **완전 범죄를 다룬 미국 영화**를 보며 살인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모든 준비를 마친 저녁 6시, 범행 6시간 전 박한상 씨는 또다시 집을 나섰고, 심지어 **성매매 업소까지 방문**했던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안겼습니다. 그는 부모를 살해하기 직전, 성매매 업소에 들러 "한 번 할 생각이었다"고 진술하며 범행 직전까지 비정상적인 행태를 보였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박한상 씨는 밤 12시, 부모님이 잠든 것을 확인한 후 기괴한 행동을 합니다. 옷에 혈흔이 튀어 증거가 남을 것을 우려해 옷을 모두 벗어 소파 위에 놓은 뒤 팬티와 운동화만 착용하고, 하얀 침대 커버를 뒤집어쓴 채 한 손엔 람보칼, 다른 한 손엔 과도를 든 채 부모님이 잠든 안방으로 향했습니다. 그는 안방 문 가까이에 누워있던 어머니를 먼저 공격했고, 놀라 깨어난 아버지는 맨손으로 칼을 막으며 저항했습니다. 어머니 또한 필사적으로 아들의 종아리를 물어뜯으며 저항했지만, 박한상 씨는 멈추지 않고 부모님에게 칼을 휘둘렀습니다.

그가 어머니까지 살해한 동기는 바로 도박 중독과 유산 상속 때문이었습니다. 미국 유학 중 **라스베이거스** 등지에서 도박에 빠져 하룻밤에 두 달치 용돈을 탕진하고, 부모님이 차 구매 자금으로 보낸 1,500만 원까지 도박으로 날렸습니다. 빚과 거짓말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더 이상 돈을 구할 곳이 없자 그는 부모님의 유산을 상속받으려는 위험한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아버지 어머니 안 계시면, 제가 제 손으로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하며 충격을 주었습니다.

부모를 살해한 뒤 박한상 씨는 자신의 계획대로 화장실에서 몸에 묻은 피를 씻어냈습니다. 형사들이 **루미놀** 감식 용액으로 화장실을 점검했을 때, 마치 번쩍번쩍 빛이 날 정도로 혈흔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박한상 씨는 몸은 씻었지만, **머리는 감지 않아** 그곳에 핏자국이 남아 있었고, 어머니가 마지막 순간 필사적으로 남긴 **치흔**과 함께 그를 특정할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습니다. 잘못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고, 천륜을 저버린 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비극적인 진실이었습니다.

### 국내 1호 패륜범, 사회에 던진 질문

그날의 끔찍한 진실이 세상에 드러나자 대한민국은 큰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유산을 노리고 부모를 끔찍하게 살해한 '패륜아 1호' 박한상의 등장은 전문가들로 하여금 긴급 간담회를 열어 대책 마련에 나서게 했으며, 당시 유행처럼 번지던 **오렌지족** 문화와 무분별한 도피성 유학 문제 또한 사회적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유산 남기지 않기' 캠페인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처음 박한상 씨의 변호를 자처했던 황산성 변호사는 재판 과정에서 또 한 번 충격에 빠졌습니다. 박한상 씨가 경찰의 고문을 주장하며 "나는 부모를 죽이지 않았다", "제3자가 죽였을지 모른다"며 허무맹랑한 거짓말로 무죄를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황 변호사는 박한상 씨가 지목한 사람들을 일일이 조사하고 수사 과정의 문제점 여부까지 확인했지만, 모든 증거는 박한상 씨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결국 황 변호사는 "더는 상대할 가치가 없다"며 변호를 포기하고 깊은 실망과 좌절을 느꼈다고 밝혔습니다.

최종 재판에서 재판부는 "사형을 피할 수 있는 명분을 찾기 위해 고심했으나, 피고인의 부모가 살아있을 경우 아들의 사형을 원치 않았을 거란 추측 뿐"이라며 박한상 씨에게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또한, 그는 **상속인 결격자**로 판정되어 부모의 유산을 단 한 푼도 물려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한때 강남을 주름잡던 오렌지족 박한상. 그는 결국 자신의 욕망에 발목 잡혀 '패륜아 1호'라는 낙인을 얻고 몰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박한상 씨는 1997년 마지막 사형 집행 시기에 포함되지 않아 현재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며,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오랜 기간 복역하고 있는 사형수입니다. 31년이 지난 지금, 과연 그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을까요? 사건 이후 6년 동안 박한상 씨의 상담을 담당했던 교화위원은 "부모를 살해하고 증거 인멸을 위해 방화까지 한 강남의 또라이 박한상, 이 아이를 6년 이상 상담하면서 느꼈던 참담한 심정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박한상 씨가 반성은커녕 살아서도 범죄 사실을 끝까지 부인하며 오히려 다른 이에게 누명까지 씌우려 했다며, "사형수 상담 30년 동안 이 아이 앞에서만큼 참담해 본 일이 없었고, 나는 끝내 용서하고 포용할 마음을 내지 못했다"고 증언했습니다.

박한상 사건은 당시 학교, 사회, 가정 모두에게 "과연 우리는 어떻게 아이를 길러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90년대 초 유행처럼 번지던 해외 유학과 **스펙**만을 좇던 사회 분위기 속에 무너진 인간성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이 사건을 계기로 터져 나왔습니다. 인성보다는 성공을 강요하고, 윤리와 도덕보다는 속도와 경쟁이 앞서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여전히 중요한 가치를 놓치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사건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 용어해석

- **오버킬 (Overkill):**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할 이상의 과도한 살해 행위를 의미합니다. 주로 범인의 극심한 분노, 증오, 혹은 개인적인 감정적 동기가 반영된 경우에 나타납니다.
- **탄화 시신 (Carbonized Body):** 화재 등으로 인해 시신이 심하게 불에 타서 숯처럼 굳어버린 상태를 일컫는 의학 용어입니다. 시신의 원래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손상된 경우가 많습니다.
- **치흔 (Bite Mark):** 사람이나 동물 등이 피부나 다른 물체를 물어뜯어 생긴 흔적을 말합니다. 범죄 수사에서는 용의자나 피해자의 신체에 남은 치흔을 통해 중요한 단서를 얻기도 합니다.
- **루미놀 (Luminol):** 혈흔을 포함한 특정 화학 물질에 반응하여 어둠 속에서 푸른빛을 발하는 특수 화학 용액입니다. 범죄 현장에서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미세한 혈흔을 감식하는 데 사용됩니다.
- **오렌지족 (Orange Tribe):** 1990년대 초 한국 사회에서 부유층 자제나 해외 유학 경험이 있는 젊은이들을 지칭하던 용어입니다. 이들은 부모의 재력에 의존하여 값비싼 외제차를 몰고 유흥과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기는 것으로 묘사되었습니다.

##### TAG

#박한상사건, **#강남대저택살인**, **#존속살해**, **#오버킬**, **#꼬꼬무**
HTML 형태 코드 출력
<h1>100억대 자산가 부부 살인 사건, &#039;오버킬의 살인마&#039; 박한상…범행 전 성매매 업소 방문 드러나 충격</h1>
<p>발행일: 2025-08-22 12:21</p>
<p>SBS의 인기 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과거의 중요 사건들을 생생하게 재조명하며 시청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지난 21일 방영된 '오버킬의 살인마-강남 대저택 부부 살인 사건' 편은 당시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렸던 비극적인 사건의 전말을 다루며 다시금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웠습니다. 그룹 에이핑크의 박초롱 씨, 배우 최태준 씨, 박호산 씨가 '이야기 친구'로 출연하여 사건의 심각성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본 기사에서는 해당 방송 내용을 바탕으로, 당시 국민적 공분을 샀던 이 잔혹한 사건의 배경과 진행 과정,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자 합니다.</p>
<h3 class="alert alert-dark my-3">당대 최고의 변호사마저 등 돌린 '끔찍한' 범죄자</h3>
<p>이야기는 1993년 당시 '한국의 100대 스타' 중 38위에 이름을 올렸던 황산성 변호사로부터 시작됩니다.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후 20대에는 판사, 30대에는 국회의원, 40대에는 환경부 장관을 역임하며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이자 많은 여성의 '워너비'로 불렸던 인물입니다. 특히 당시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던 법률 자문 프로그램의 진행자로도 활약하며 대중적 인지도를 쌓았습니다.</p>
<p>그러나 그의 화려한 이력 중에는 다소 독특한 기록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31년 전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었던 최악의 범죄자의 변호를 맡았던 사실입니다. 황 변호사는 당시 사건 피의자의 변호를 자처한 이유에 대해 "살인 사건을 많이 변호했지만, 그토록 끔찍한 일을 어떻게 감당할지 걱정스러웠다"며, 피의자를 만나 '전도'하여 뉘우치게 할 생각이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피의자와 직접 대면한 후 황 변호사는 깊은 절망감을 느꼈다고 회고합니다. 그는 피의자를 "진짜 나쁜 놈", "아주 잔인한 놈"이라고 표현하며, 결국 변호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당대 최고의 법조인조차 감당하기 힘들었던 이 범죄자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오늘은 전 국민을 경악게 했던 '1호' 패륜 범죄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히 다루겠습니다.</p>
<h3 class="alert alert-dark my-3">100억대 자산가 부부의 비극적인 죽음</h3>
<p>사건은 1994년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발생했습니다. 당시 삼성동은 그룹 총수, 연예인, 정재계 인사 등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부촌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주민들 사이에서는 '꿈의 궁전'이라 불리던 3층짜리 단독주택이 있었습니다. 실내 평수만 150평에 달하는 이 집은 당시 가격으로 약 9억 원, 현재 시세로는 300억 원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의 저택이었습니다.</p>
<p>이 저택의 주인은 한약사 박 씨 부부였습니다. 남편 박 씨는 한약재 시장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한약방을 운영하며 한약재 유통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두어 당시 100억 원에 달하는 자산을 축적했습니다. 이는 현재 가치로 약 1조 원에 해당하는 막대한 재산이었습니다. 이들은 회원 3천 명이 넘는 전국 한약사 모임의 서울시 지부장에 박 씨가 당선될 만큼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인물이었습니다.</p>
<p>그러나 이 부유한 부부는 한 달 전 발생한 도난 사건으로 인해 자택 지상층 전체에 보안 시스템 공사를 진행하게 되었고, 그 때문에 잠시 지하실에서 기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1시 30분, 박 씨 부부의 집에서 불이 났다는 신고 전화가 119에 접수되었습니다. 소방대는 신속하게 출동하여 20분 만에 불길을 잡았지만, 꿈의 궁전은 하룻밤 사이 잿더미로 변해버렸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박 씨 부부가 지하실 안방 장롱 앞에서 <strong>까맣게 탄 시신</strong>으로 발견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보통 주택 화재 시 시신은 창문이나 출입구 근처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많지만, 부부는 문과 반대 방향에 엎드린 채 발견되어, 불이 나기 전에 이미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음을 짐작게 했습니다.</p>
<h3 class="alert alert-dark my-3">단순 화재에서 잔혹한 살인 사건으로 전환</h3>
<p>부부의 시신이 병원 영안실로 옮겨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건은 전혀 예상치 못한 국면을 맞이했습니다. 당시 강남경찰서 강력2반 조상복 형사는 영안실로부터 충격적인 전화를 받았습니다. 영안실 직원이 <strong>탄화 시신</strong> 상태인 부부의 시신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고 보고한 것입니다. 시신이 불에 타 수축되었던 피부가 온도 변화로 서서히 이완되면서,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던 칼에 찔린 흔적이 뒤늦게 드러난 것이었습니다.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간 형사들은 시신을 뒤집어보고서야 칼에 찔린 상처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참혹한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이는 단순 화재 사건이 아닌, 명백한 살인 사건임을 시사했습니다.</p>
<p>화재 감식 결과는 이 충격을 더했습니다. 지하실에서 <strong>휘발유</strong>가 발견되어, 누군가 고의적으로 불을 지른 <strong>방화</strong> 사건임이 밝혀진 것입니다. 당시 언론은 "엽기적인 살인사건", "100억대 자산가 부부가 흉기에 찔린 채 불에 타 참혹하게 숨졌다"고 보도하며 사건의 심각성을 알렸습니다.</p>
<p>곧바로 꾸려진 수사팀은 처음에는 금품을 노린 강도 살인에 무게를 두었습니다. 그러나 범죄 현장을 조사한 결과, 1층에 있던 금고와 그 안의 현금, 수표, 다이아몬드 반지 등이 모두 온전한 상태였고, 뒤진 흔적도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범인이 돈이 아닌, 부부 자체를 노렸을 가능성을 높였습니다.</p>
<p>이후 국과수에서 진행된 부검 감정서는 형사들의 얼굴을 창백하게 만들었습니다. 남편의 시신에서는 안면부, 복부, 등 등 총 51군데의 자상이 발견되었고, 특히 심장 부위는 구멍이 뻥 뚫릴 정도로 18차례나 집중적으로 찔린 흔적이 확인되었습니다. 부인의 시신에서도 총 46군데의 자상이 발견되었으며, 턱 아래 목 부위는 머리가 분리될 정도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습니다. 두 사람은 합쳐서 무려 100여 차례의 <strong>다발성 자창</strong>, 즉 <strong>오버킬</strong>로 살해된 것이었습니다.</p>
<p>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소장은 오버킬이 나타나는 주요 이유 중 하나로 "감정적 요소"를 꼽았습니다. 피해자에 대한 깊은 원한, 치정, 혹은 얽히고설킨 금품 관계로 인해 극도의 분노가 표출될 때 나타나며, 단순히 살해하는 것을 넘어 과도하게 흉기를 휘두르는 특징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특정 신체 부위에 상처가 집중되어 있다면, 이는 명확한 목표 의식을 가지고 공격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하며, 단순히 미움이나 분노를 넘어선 강한 증오가 깔려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습니다. 부검감정서에는 남편의 손에서 맨손으로 칼을 막으려다 생긴 <strong>방어흔</strong>도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박 씨가 범인과 몸싸움을 벌였음을 시사하며, 범인에게도 상처가 남아있을 수 있다는 중요한 단서가 되었습니다.</p>
<h3 class="alert alert-dark my-3">뜻밖의 용의자, 사건의 충격적 전개</h3>
<p>형사들은 먼저 부부의 주변 인물들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탐문 수사를 시작했습니다. 박 씨가 워낙 마당발이었기에 시장 상인, 협회 관계자, 친척, 동네 주민, 심지어 배달부까지 강남 일대를 샅샅이 뒤졌습니다. 초기에는 한 달 전 집 수리 과정에서 아내 조 씨와 갈등을 빚었던 공사 담당자 A씨를 유력 용의자로 보았으나, A씨의 명확한 알리바이와 범행 동기의 불충분함으로 수사망에서 벗어났습니다. 또한, 박 씨가 서울시 지부장으로 당선된 것에 불만을 품은 사람이 있을까 하여 한약사 모임 관계자들을 조사했지만, 지부장이 명예직이라 특별한 불화는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p>
<p>형사들이 수사에 난항을 겪던 중, 사건 다음 날인 5월 20일 아침, 한 병원 응급실에 부스스한 머리와 옷 여기저기에 그을린 흔적, 팔과 종아리에 진물이 흐르는 남성이 들어왔습니다. 그는 전날 새벽 집에 불이 나서 탈출하다 다쳤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는 바로 박 씨 부부의 맏아들 박한상(23세) 씨였습니다. 미국에서 유학 중 방학을 맞아 귀국한 박 씨는 사건 당일 부모와 함께 지하실에 머물고 있었습니다.</p>
<p>그러나 박한상 씨의 진술은 여러모로 석연치 않았습니다. 그는 새벽 1시경 소변이 마려워 잠에서 깼을 때 안방에서 불길이 치솟는 것을 보고 작은방 창문을 통해 혼자 탈출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부모님의 안전을 먼저 확인하지 않은 채 혼자 탈출한 행동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더욱 충격적인 것은 부모님이 100여 군데 자상을 입고 사망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진술한 점입니다. 그는 "미국에서 와서 시차 적응이 안 돼 며칠 잠을 못 잤는데, 하필 그날 밤 9시부터 깊이 잠들어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고 변명했습니다.</p>
<p>조상복 형사는 박한상 씨의 진술이 거짓임을 직감했지만, 자식이 부모를 잔인하게 살해했다는 사실을 쉽게 믿기 어려워 더 이상 캐묻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강력1반 소속 한상희 형사는 박한상 씨의 친척들을 조사하던 중, 그가 평소 돈 문제로 부모 속을 많이 썩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습니다. 특히 장례식장에서 박한상 씨가 끔찍한 사고를 당한 부모의 현장을 태연하게 둘러보고 심지어 청소까지 하는 모습에 한 형사는 그를 예의주시하기 시작했습니다.</p>
<p>두 형사는 윗선에 박한상 씨를 용의자로 보고하고 수사를 요청했으나, "자식이 부모를 잔인하게 죽일 리 없다", "의심만으로 유족에게 2차 가해를 할 수 없다"는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당시만 해도 계획적이고 잔인한 존속 살해는 전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 형사와 한 형사는 확고한 심증을 가지고 몰래 '투 트랙 수사'를 진행했습니다.</p>
<p>조 형사는 박한상 씨의 감청을 시작했습니다. 사건 이후 친척집에 머물던 박 씨가 여자친구와 통화하는 내용을 듣고 그는 또 한 번 확신을 얻었습니다. 부모상을 당한 아들의 태도라고는 볼 수 없는 담담하고 우울함 없는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사건 발생 4일째, 박한상 씨의 화상 치료를 담당했던 병원 간호사로부터 결정적인 제보를 받게 됩니다. 간호사는 "처음 왔을 때부터 머리에 피가 많이 묻어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다친 상처는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조 형사는 이것이 피해자의 혈흔일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p>
<p>간호사는 또 하나의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습니다. 박한상 씨의 종아리 쪽에서 누군가 물어뜯은 듯한 <strong>치흔</strong>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조 형사는 곧장 박한상 씨가 머무는 친척집으로 찾아가 그의 종아리를 살폈고, 그곳에서 <strong>피해자와 범인 사이에 몸싸움이 있었다는 방어흔, 즉 치흔</strong>을 확인했습니다. 사건 담당 법치의학자 김종열 교수는 이 치흔이 단순 표피 박탈을 넘어 피부가 찢어진 <strong>좌열상</strong>이라고 감정했습니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 종아리 치흔이 어머니 조 씨의 치열과 정확히 일치했던 것입니다. 조 형사는 "어머니가 칼에 찔리면서 필사적으로 아들의 종아리를 물었던 모양"이라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어머니의 다리를 아들이 잔인하게 물어뜯기면서도 계속 찔렀다고 진술했습니다. 이는 박한상 씨가 이미 인간의 심정을 포기한 상태였음을 보여주는 참혹한 증거였습니다.</p>
<p>이제 남은 것은 박한상 씨의 자백이었습니다. 한상희 형사는 박한상 씨를 불러내 조용히 "왜 그런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느냐"고 물었습니다. 불시에 던져진 질문에 박한상 씨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한 형사는 그간 수사한 증거들을 내밀며 추궁했습니다. 결국 박한상 씨는 모든 범행을 자백하기 시작했습니다.</p>
<h3 class="alert alert-dark my-3">'오버킬' 살인마의 정체와 범행 동기</h3>
<p>박한상 씨는 곧장 경찰서로 연행되었고, 경찰서에 몰려든 취재진 앞에서 그는 고개를 돌리며 카메라를 피하기에 급급했습니다. 부모를 죽인 이유와 그토록 많이 흉기로 찌른 이유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박한상 씨는 "기억이 안 나요... 아무 정신이 없었어요"라고 모호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집 인근 공터에서 범행에 사용된 칼이 발견되었고, 그가 갈아입은 옷에서는 아버지의 혈흔이 확인되었습니다. 무려 100여 차례 칼을 휘둘러 부모를 살해한 <strong>오버킬 살인마</strong>의 정체는 바로 그들의 맏아들 박한상 씨였습니다.</p>
<p>한상희 형사는 31년이 지난 지금도 박한상 씨의 자백을 받던 순간을 떠올리면 섬뜩한 기분이 든다고 말합니다. 자백 조서를 받던 중 박한상 씨는 "여자친구에게 전화 한 번만 해달라"고 요청하는 등 전혀 반성하는 기색 없이 완전범죄를 저지르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한 형사는 당시 "얘는 무서운 애구나. 사람이 아니라고 느꼈다"고 회고하며 인류애가 부서지는 듯한 참담함을 느꼈다고 전했습니다.</p>
<p>박한상 씨가 부모에게 이토록 잔인한 범행을 저지른 동기는 무엇이었을까요? 남부럽지 않은 재력가 집안이었지만, 그 가족 안에는 오래전부터 깊은 균열이 존재했습니다. 삼형제 중 장남이었던 박한상 씨는 아버지 박 씨가 가장 아끼는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에게 최고의 옷과 음식을 제공하며 깊은 사랑을 쏟았습니다. 특히 아버지는 박한상 씨가 자신을 이어 한약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러나 박한상 씨는 학업에 전혀 소질이 없었고, 지방 소도시에 있는 토목학과에 겨우 입학했습니다.</p>
<p>그는 학교생활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서울에서 <strong>오렌지족</strong>으로 불리며 부유층 자제들과 어울려 사치와 향락을 즐겼습니다. 이에 아버지는 박한상 씨를 꾸짖으며 "이럴 거면 호적에서 나가라"고 질책했습니다. 결국 박한상 씨는 1993년 8월 미국 캘리포니아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그는 매달 200만 원에 달하는 용돈을 받으며 유학생들과 어울려 방탕한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돈이 떨어지면 몰래 귀국해 카드 대출을 받아 유흥에 탕진하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p>
<p>결국 아버지는 박한상 씨의 모든 행각을 알게 되었고, 사건 발생 이틀 전 심하게 꾸짖으며 다시 한번 호적에서 파내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박한상 씨는 아버지의 질책이 자신의 범죄 동기 중 하나가 되었다고 진술했지만, 그 이면에는 더욱 끔찍한 계획이 숨겨져 있었습니다.</p>
<p>범행 결심 다음 날 오전 11시, 박한상 씨는 잡화점에서 <strong>람보칼</strong>을 구입하고 주유소에서 휘발유 8리터를 샀습니다. 그는 범행 전 <strong>완전 범죄를 다룬 미국 영화</strong>를 보며 살인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모든 준비를 마친 저녁 6시, 범행 6시간 전 박한상 씨는 또다시 집을 나섰고, 심지어 <strong>성매매 업소까지 방문</strong>했던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안겼습니다. 그는 부모를 살해하기 직전, 성매매 업소에 들러 "한 번 할 생각이었다"고 진술하며 범행 직전까지 비정상적인 행태를 보였습니다.</p>
<p>집으로 돌아온 박한상 씨는 밤 12시, 부모님이 잠든 것을 확인한 후 기괴한 행동을 합니다. 옷에 혈흔이 튀어 증거가 남을 것을 우려해 옷을 모두 벗어 소파 위에 놓은 뒤 팬티와 운동화만 착용하고, 하얀 침대 커버를 뒤집어쓴 채 한 손엔 람보칼, 다른 한 손엔 과도를 든 채 부모님이 잠든 안방으로 향했습니다. 그는 안방 문 가까이에 누워있던 어머니를 먼저 공격했고, 놀라 깨어난 아버지는 맨손으로 칼을 막으며 저항했습니다. 어머니 또한 필사적으로 아들의 종아리를 물어뜯으며 저항했지만, 박한상 씨는 멈추지 않고 부모님에게 칼을 휘둘렀습니다.</p>
<p>그가 어머니까지 살해한 동기는 바로 도박 중독과 유산 상속 때문이었습니다. 미국 유학 중 <strong>라스베이거스</strong> 등지에서 도박에 빠져 하룻밤에 두 달치 용돈을 탕진하고, 부모님이 차 구매 자금으로 보낸 1,500만 원까지 도박으로 날렸습니다. 빚과 거짓말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더 이상 돈을 구할 곳이 없자 그는 부모님의 유산을 상속받으려는 위험한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아버지 어머니 안 계시면, 제가 제 손으로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하며 충격을 주었습니다.</p>
<p>부모를 살해한 뒤 박한상 씨는 자신의 계획대로 화장실에서 몸에 묻은 피를 씻어냈습니다. 형사들이 <strong>루미놀</strong> 감식 용액으로 화장실을 점검했을 때, 마치 번쩍번쩍 빛이 날 정도로 혈흔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박한상 씨는 몸은 씻었지만, <strong>머리는 감지 않아</strong> 그곳에 핏자국이 남아 있었고, 어머니가 마지막 순간 필사적으로 남긴 <strong>치흔</strong>과 함께 그를 특정할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습니다. 잘못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고, 천륜을 저버린 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비극적인 진실이었습니다.</p>
<h3 class="alert alert-dark my-3">국내 1호 패륜범, 사회에 던진 질문</h3>
<p>그날의 끔찍한 진실이 세상에 드러나자 대한민국은 큰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유산을 노리고 부모를 끔찍하게 살해한 '패륜아 1호' 박한상의 등장은 전문가들로 하여금 긴급 간담회를 열어 대책 마련에 나서게 했으며, 당시 유행처럼 번지던 <strong>오렌지족</strong> 문화와 무분별한 도피성 유학 문제 또한 사회적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유산 남기지 않기' 캠페인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p>
<p>처음 박한상 씨의 변호를 자처했던 황산성 변호사는 재판 과정에서 또 한 번 충격에 빠졌습니다. 박한상 씨가 경찰의 고문을 주장하며 "나는 부모를 죽이지 않았다", "제3자가 죽였을지 모른다"며 허무맹랑한 거짓말로 무죄를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황 변호사는 박한상 씨가 지목한 사람들을 일일이 조사하고 수사 과정의 문제점 여부까지 확인했지만, 모든 증거는 박한상 씨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결국 황 변호사는 "더는 상대할 가치가 없다"며 변호를 포기하고 깊은 실망과 좌절을 느꼈다고 밝혔습니다.</p>
<p>최종 재판에서 재판부는 "사형을 피할 수 있는 명분을 찾기 위해 고심했으나, 피고인의 부모가 살아있을 경우 아들의 사형을 원치 않았을 거란 추측 뿐"이라며 박한상 씨에게 <strong>사형</strong>을 선고했습니다. 또한, 그는 <strong>상속인 결격자</strong>로 판정되어 부모의 유산을 단 한 푼도 물려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한때 강남을 주름잡던 오렌지족 박한상. 그는 결국 자신의 욕망에 발목 잡혀 '패륜아 1호'라는 낙인을 얻고 몰락의 길을 걸었습니다.</p>
<p>박한상 씨는 1997년 마지막 사형 집행 시기에 포함되지 않아 현재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며,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오랜 기간 복역하고 있는 사형수입니다. 31년이 지난 지금, 과연 그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을까요? 사건 이후 6년 동안 박한상 씨의 상담을 담당했던 교화위원은 "부모를 살해하고 증거 인멸을 위해 방화까지 한 강남의 또라이 박한상, 이 아이를 6년 이상 상담하면서 느꼈던 참담한 심정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박한상 씨가 반성은커녕 살아서도 범죄 사실을 끝까지 부인하며 오히려 다른 이에게 누명까지 씌우려 했다며, "사형수 상담 30년 동안 이 아이 앞에서만큼 참담해 본 일이 없었고, 나는 끝내 용서하고 포용할 마음을 내지 못했다"고 증언했습니다.</p>
<p>박한상 사건은 당시 학교, 사회, 가정 모두에게 "과연 우리는 어떻게 아이를 길러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90년대 초 유행처럼 번지던 해외 유학과 <strong>스펙</strong>만을 좇던 사회 분위기 속에 무너진 인간성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이 사건을 계기로 터져 나왔습니다. 인성보다는 성공을 강요하고, 윤리와 도덕보다는 속도와 경쟁이 앞서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여전히 중요한 가치를 놓치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사건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p>
<h2 class="alert alert-dark my-3">용어해석</h2>
<ul>
<li><strong>오버킬 (Overkill):</strong>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할 이상의 과도한 살해 행위를 의미합니다. 주로 범인의 극심한 분노, 증오, 혹은 개인적인 감정적 동기가 반영된 경우에 나타납니다.</li>
<li><strong>탄화 시신 (Carbonized Body):</strong> 화재 등으로 인해 시신이 심하게 불에 타서 숯처럼 굳어버린 상태를 일컫는 의학 용어입니다. 시신의 원래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손상된 경우가 많습니다.</li>
<li><strong>치흔 (Bite Mark):</strong> 사람이나 동물 등이 피부나 다른 물체를 물어뜯어 생긴 흔적을 말합니다. 범죄 수사에서는 용의자나 피해자의 신체에 남은 치흔을 통해 중요한 단서를 얻기도 합니다.</li>
<li><strong>루미놀 (Luminol):</strong> 혈흔을 포함한 특정 화학 물질에 반응하여 어둠 속에서 푸른빛을 발하는 특수 화학 용액입니다. 범죄 현장에서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미세한 혈흔을 감식하는 데 사용됩니다.</li>
<li><strong>오렌지족 (Orange Tribe):</strong> 1990년대 초 한국 사회에서 부유층 자제나 해외 유학 경험이 있는 젊은이들을 지칭하던 용어입니다. 이들은 부모의 재력에 의존하여 값비싼 외제차를 몰고 유흥과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기는 것으로 묘사되었습니다.</li>
</ul>
<h5 class="alert alert-dark my-3">TAG</h5>
<p class="alert alert-dark my-3">#박한상사건</strong>, <strong>#강남대저택살인</strong>, <strong>#존속살해</strong>, <strong>#오버킬</strong>, <strong>#꼬꼬무</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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