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천국' 같던 습지가 말라간다? 석유가 부른 슬픈 그림자

이라크는 세계 5번째 석유 생산국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매일 정전이 끊이지 않고 전기의 대부분을 이란에서 수입합니다. 특히 이라크 남부의 비옥했던 하위자 습지는 석유 생산의 그늘 아래 점차 사라지고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한때 풍요로웠던 이 습지는 이제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위협하는 건조한 땅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삶의 터전이 사라지는 하위자 습지

하위자 습지는 물과 하늘이 거울처럼 맞닿아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던 곳이었습니다. 23살 무스타파 씨는 좁은 나무배를 타고 매일 아침 안개 낀 수로를 나아가지만, 물은 점점 얕아지고 배를 젓는 것조차 힘들어졌습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어부들과 가족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이곳은 이제 고요함만이 맴돕니다.

무스타파 씨의 할아버지 카시드 와니스 씨(87세)는 예전엔 하위자에서 바스라까지 배를 타고 다녔다고 회상합니다. "우리는 자동차가 뭔지도 몰랐어요. 물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죠." 하지만 무스타파 씨의 아버지 하심 씨(41세)는 4년 전부터 어업을 포기했습니다. "더 이상 살아갈 물이 없어요." 그의 조용한 한숨에서 비극이 느껴집니다.

석유와 물, 그리고 끝없는 갈증

이 하위자 습지 아래에는 엄청난 양의 석유가 묻혀 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자 람사르 협약으로 보호받는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할파야, 후와이자, 마즈눈 유전 같은 주요 유전들이 이 습지와 겹쳐져 있습니다. 특히 ‘미친’이라는 뜻의 마즈눈 유전은 세계적인 '초거대 유전'으로 불립니다.

하지만 이 석유를 뽑아내려면 엄청난 양의 물이 필요합니다. 이미 가뭄과 사막화로 고통받는 이라크에서, 유전 개발은 습지의 물을 더 빠르게 빨아들이는 주범이 되고 있습니다. 약 10년 전, 중국 국영 석유회사 페트로차이나가 이곳에서 운영을 시작한 후, 습지로 물을 공급하는 티그리스 강변에 6개의 양수장이 지어졌습니다. 이 양수장들은 매일 중소도시 하루 사용량과 맞먹는 약 6만 세제곱미터의 물을 유전으로 끌어다 씁니다. 뽑아낸 물은 원유 추출량을 늘리기 위해 유정 내부에 주입됩니다.

설상가상으로 터키와 이란의 댐 건설로 인해 이라크 남부로 흐르는 물의 양은 1970년대 이후 절반 이상 줄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석유 산업 단지에 물을 공급하는 것은 주민들에게 삶의 터전과 방식을 빼앗는 행위가 되고 있습니다.

환경 오염과 억압, 그리고 저항

물 부족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석유 채굴은 심각한 환경 오염을 불러옵니다. 마이산 주 농업부 국장 마지드 알-사디 씨는 "이 경제는 문자 그대로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가 작성한 보고서에는 식수에서 검출된 높은 농도의 탄화수소와 중금속, 그리고 지역 농업의 붕괴에 대한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주민들의 삶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한때 습지 깊숙이 이어지던 수로는 군사 검문소로 막혔고, 무장 경비대가 접근을 통제하며 주민들의 신분증을 요구합니다. 무스타파 씨는 "정부가 저항 없이 땅을 이용하려 한다"며 분통을 터뜨립니다. 심지어 무스타파 씨는 2023년 아버지와 함께 페트로차이나의 하청 노동자로 일하며 "이것은 개발이 아니라 진보로 위장한 파괴"임을 깨달았습니다.

말라가는 습지 속에서도 주민들의 저항은 계속됩니다. 새로운 시추 허가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무스타파 씨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것은 오늘날의 시추 권리만을 위한 싸움이 아니다. 다음 세대가 우리 조상들이 수천 년 동안 지켜온 습지를 알 수 있도록 싸우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현재 바스라 인권위원장은 물 부족, 오염, 독성 증가로 인한 인도적 재앙을 경고하며 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무스타파 씨는 말합니다. "정부와 기업들은 우리를 나눌 케이크처럼 취급해요. 그들에게 이 물은 사업 기회일 뿐이지만, 우리에겐 생명입니다."

FAQ

고급/전문 용어 해석

• 가스 플레어링(Gas Flaring): 유전에서 원유와 함께 나오는 천연가스를 태워 버리는 행위를 말합니다. 보통 경제성이 없거나 운반 시설이 부족할 때 이루어지며, 대기 오염을 유발합니다.
• 람사르 협약(Ramsar Convention): 물새 서식지로서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 보호에 관한 협약입니다. 1971년 이란 람사르에서 채택되어 습지의 보전과 현명한 이용을 목표로 합니다.
•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유네스코가 인류 전체를 위해 보존해야 할 뛰어난 보편적 가치를 지닌 유산으로 지정한 문화유산, 자연유산, 복합유산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 탄화수소(Hydrocarbons): 탄소와 수소로 이루어진 유기화합물로, 석유나 천연가스의 주성분입니다. 환경에 노출될 경우 심각한 오염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 중금속(Heavy Metals): 비중이 큰 금속 원소들을 통칭하는 말로, 수은, 납, 카드뮴 등이 대표적입니다. 소량이라도 인체나 환경에 축적될 경우 독성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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